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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정당방위·긴급피난·자구행위의 구별과 요건

by 모지랭이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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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방위·긴급피난·자구행위의 구별과 요건
정당방위·긴급피난·자구행위의 구별과 요건

I. 서론

형법은 일반적으로 행위자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하며, 책임 있는 행위’일 때 범죄로 인정한다.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사유가 존재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위법성조각사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이다.

이들은 모두 외부로부터 위법한 또는 위난의 상황에 대응하여 행위자가 자신 또는 타인의 법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취한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각각 인정 요건과 적용 범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본 글에서는 세 가지 개념의 비교와 구체적 요건 및 판례상 쟁점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II. 정당방위 (형법 제21조)

1. 개념

정당방위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로서, 형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 이는 공권력이 개입하기 어려운 급박한 상황에서, 개인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구적으로 법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2. 요건

(1) 침해의 존재

  • 객관적 요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침해가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함.
  • 부당한 침해: 침해는 위법하고 정당화되지 않은 것이어야 하며, 공권력 행사(예: 적법한 체포)는 이에 해당하지 않음.

(2) 침해의 현재성

  • 침해가 이미 종료된 경우나 장래의 침해는 해당하지 않으며, 현재 진행 중이거나 임박한 경우만 인정된다.

(3) 방위의 필요성

  •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행위여야 하며, 보복이나 감정적 대응은 허용되지 않는다.

(4) 상당성 (비례성)

  • 방위수단과 침해의 위험 사이에 상당한 균형이 있어야 한다. 즉, 과잉방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5) 주관적 요건

  • 방위의사가 필요하다. 단순한 공격이나 보복이면 정당방위가 되지 않는다.

3. 형법상 효과

  • 제1항: 모든 요건을 충족한 경우 위법성 조각
  • 제2항: 요건 중 일부가 과도한 경우 과잉방위로서 감면(형 감경 또는 면제 가능)

III. 긴급피난 (형법 제22조)

1. 개념

긴급피난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 형법 제22조에 규정되어 있다. 위난이란 자연재해, 동물의 공격, 차량 돌진 등 위법한 인간의 행위가 아닌 기타 모든 위험요소를 포함한다.

2. 요건

(1) 위난의 존재

  • 법익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이 존재해야 하며, 자연재해, 동물, 기계장애, 가해자의 정신병적 행위 등도 포함된다.

(2) 위난의 현재성

  • 장래의 가능성이나 과거의 위협은 포함되지 않음. 즉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성이 요구된다.

(3) 피난의 필요성

  • 위난을 회피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피난행위가 요구되어야 한다. 피난 외에 다른 수단이 있다면 인정되지 않는다.

(4) 상당성 (법익의 균형)

  • 피난을 통해 보호되는 법익이 침해되는 법익보다 명백히 더 커야 한다. 예: 생명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물건을 파손하는 경우 가능

(5) 주관적 요건

  • 위난을 회피하려는 인식과 의사가 있어야 함

3. 형법상 효과

  • 제1항: 요건 모두 충족 시 위법성 조각
  • 제2항: 법익 균형을 일탈했으나 기타 요건 충족 시 감면

IV. 자구행위 (형법 제23조)

1. 개념

자구행위란 법정절차에 의할 수 없는 경우에, 자기의 권리행사를 위해 불가피하게 행한 상당한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예외적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2. 요건

(1) 법정절차의 불가능성

  • 법률에서 정한 절차(예: 민사소송, 형사고소 등)를 사용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어야 한다.
  • 긴급성이 있어야 하며, 평상시 상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2) 자기 권리의 행사

  • 보호하려는 권리는 법률상 보장된 것이어야 하며, 불법적인 이익은 해당하지 않는다.
  • 타인의 권리를 위한 자구행위는 인정되지 않음.

(3) 상당한 행위

  • 권리보호 수단으로 적절하고, 침해되는 법익과의 비례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4) 주관적 요건

  •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인식과 의도가 있어야 함

3. 형법상 효과

  • 제1항: 요건 충족 시 위법성 조각
  • 제2항: 상당성을 일탈한 경우 형의 감면 가능

V. 세 제도의 비교

구분정당방위긴급피난자구행위
보호법익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 자기의 권리
위협 요인 타인의 ‘부당한 침해’ 자연재해·비난불가능한 상황 등 ‘위난’ 절차를 거칠 수 없는 급박 상황
대응 행위 방어 행위 회피 행위 권리 실현 행위
현재성 요구 O O O
제3자 보호 가능성 O O X
요건 미달 시 과잉방위(형법 제21조 2항) 피난의 과잉(형법 제22조 2항) 자구행위의 과잉(형법 제23조 2항)
 

VI. 주요 판례 분석

1. 정당방위

대법원 2010.12.23. 선고 2010도11675 판결
– 피해자가 갑자기 흉기를 들고 달려들자 방어 차원에서 가한 행위는 정당방위 인정.

대법원 2005.10.28. 선고 2005도5175 판결
– 도망가는 사람을 계속 폭행한 경우, 현재성이 결여되어 정당방위 불인정

2. 긴급피난

대법원 1982.9.28. 선고 82도1561 판결
– 홍수로 침수 위협이 있어 인근 담장을 무너뜨려 물길을 트게 한 경우 → 긴급피난 인정

대법원 1994.7.29. 선고 94도1103 판결
– 심한 추위 속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단 침입하여 음식을 섭취한 경우 → 긴급피난 가능성 검토

3. 자구행위

대법원 2002.4.26. 선고 2002도422 판결
– 채무자가 도주하려 하자 현장에서 신체 제압 → 법정절차 불가능성이 인정되어 자구행위로 인정 가능

대법원 1987.9.22. 선고 87도1363 판결
– 차량 도난을 우려해 타인의 재산을 침해한 경우, 자구행위의 상당성 결여로 위법성 조각 부정


VII. 학설 쟁점

  •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경계: 침해 주체가 사람인지 자연물인지 여부가 핵심이나, 정신질환자나 동물 등의 경우 해석상 혼란 가능
  • 자구행위의 범위: 민사상 자력구제의 금지 원칙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어, 헌법상 재판청구권과의 긴장관계 존재
  • 주관적 요건의 필요성: 판례는 객관적 요건 중심이나, 학계에서는 주관적 요소도 위법성 조각에 필수라는 견해 우세

VIII. 결론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는 모두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범죄 구성요건이 충족되더라도 일정한 경우에 형벌을 면제하는 제도이다. 이들 사이의 구별은 외부 상황과 침해 주체, 보호 대상, 긴급성 등에 따라 달라지며, 특히 상당성(비례성)은 공통된 판단 기준이 된다.

실무상으로도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은 매우 빈번히 주장되는 방어논리이므로, 법적 요건과 그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나, 점점 피해자 보호와 자기방어권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해석의 유연성이 확대되는 경향도 보인다.

결국 법익 간의 충돌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수단을 선택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러한 위법성 조각사유의 올바른 적용은 형사법의 정당성과 형평성 실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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