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형법상 범죄는 일반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하며 책임 있는 행위”로 정의된다. 이 중에서도 행위란 범죄 체계의 출발점이며, 그 행위가 객관적으로 어떤 결과를 발생시켰는지를 규명하는 ‘인과관계’의 성립 여부는 구성요건의 충족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구성요건적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 움직임 이상의 법적 의미를 가지며, 인과관계 이론은 이러한 행위가 결과 발생의 원인으로서 인정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틀을 제시한다. 본 글에서는 행위 개념의 발전과 구성요건적 행위의 의미를 먼저 고찰하고, 이어서 인과관계의 이론 및 판례상 적용을 정리한 후, 두 이론 간의 실질적 연계성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II. 구성요건적 행위의 개념과 이론
1. 행위 개념의 발전
행위란 외부 세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의식적 의지에 따른 움직임을 의미하며, 형법적 의미의 행위는 단순한 생물학적 동작과 구별된다. 행위론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이론의 계보로 설명된다.
(1) 인과행위론
- 개념: 인간의 의지에 따라 유발된 신체적 변화가 객관적 인과과정을 통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명.
- 한계: 범죄의 윤리적·심리적 요소가 배제되어 도덕적 비난가능성과의 연결이 부족하다.
(2) 사회적 행위론
- 개념: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의사표시를 포함한 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 의의: 행위자와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난 가능성의 근거를 마련.
(3) 최종행위론
- 대표자: 웰젤(Wezel)
- 개념: 인간은 결과를 향해 의도적으로 작용하는 존재이므로, 행위란 '목적지향적 의지'의 표출이다.
- 결론: 행위란 의사결정과정을 수반한 의지적 활동으로, 인격적 비난 가능성을 정당화할 수 있음.
이러한 이론들은 단순히 행위의 존재를 넘어 ‘책임질 수 있는 행위’인지 여부, 즉 형사처벌의 정당화 근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2. 구성요건적 행위
구성요건적 행위란 범죄의 객관적 요소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컨대 살인죄(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라는 결과범이므로, ‘죽음’이라는 결과를 야기한 행위가 구성요건적 행위에 해당한다.
(1) 요소
- 객관적 요건: 외부적으로 인식 가능한 신체적 행위여야 함
- 의사결정성: 단순 반사적 행위나 외력에 의한 움직임은 제외
- 사회적 의미: 행위의 사회적 위험성, 규범위반성이 인정되어야 함
(2) 행위의 유형
- 작위: 신체적 행동을 통해 직접 결과를 유발하는 행위 (예: 칼로 찌름)
- 부작위: 기대된 행위를 하지 않아 결과가 발생한 경우 (예: 구조의무를 방기하여 익사)
(3) 결과발생 여부
- 구성요건적 행위는 ‘결과범’의 경우, 일정한 결과 발생이 있어야 완성된 것으로 평가됨.
- 결과 없는 단순 행위는 미수범 내지 예비죄로 다뤄짐.
III. 인과관계의 이론
1. 인과관계의 의의
형법상 결과범에서는 행위와 결과 사이에 객관적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즉, “행위가 결과를 발생시킨 원인인가?”라는 문제가 법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는 구성요건 성립의 전제조건이자, 책임 판단의 기초가 된다.
2. 주요 인과관계 이론
(1) 조건설
- 개념: 결과 발생에 기여한 모든 조건이 인과관계에 포함됨. ‘조건이 없었더라면 결과도 없었을 것’(조건 개념 공식).
- 장점: 인과관계 범위를 넓게 설정해 사실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유리
- 단점: 지나치게 넓은 인과관계 인정으로 형법상 비난의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음
(2) 상당인과관계설
- 개념: 단순히 조건이 아니라, 일반적 경험상 통상적인 결과 발생이 예견 가능했던 행위만을 인과관계로 인정
- 판례 예: 타인의 상해 후 병원 미수송으로 사망한 경우, ‘상당한 결과’로 본 사례 다수
- 한계: 예견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 요소가 포함되어 법적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3) 객관적 귀속 이론
- 대표자: 독일학설
- 개념: 행위자가 사회적으로 금지된 위험을 발생시켰고, 그 위험이 결과로 현실화된 경우에만 인과관계 인정
- 요건:
- 행위에 의해 금지된 위험이 창출되었는가?
- 그 위험이 실제로 결과로 실현되었는가?
- 피해자의 자해나 제3자의 개입은 없었는가?
(4) 판례의 입장
- 대한민국 판례는 기본적으로 조건설을 기초로 하면서 상당인과관계의 개념을 함께 고려한다.
- 대표 판례: “원인이 된 행위 없이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가 일반적으로 예견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대법원 2004도3613)
IV. 구성요건적 행위와 인과관계의 연계성
- 구성요건적 행위로 평가되기 위한 필수 조건
결과범에서 행위가 구성요건적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행위가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결과 발생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 인과관계가 없으면 결과는 행위자에게 귀속되지 않으므로, 해당 구성요건은 충족되지 않는다.
- 부작위범과 인과관계
부작위범에서 인과관계는 특히 논쟁이 많다. 단순히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자에게 ‘작위의무’가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상당인과관계설 또는 객관적 귀속이론이 보완적으로 적용된다.
- 결과가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경우
예를 들어, 살인 의도로 독을 탄 음식을 먹이려 했지만 피해자가 우연히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이 경우에는 미수범이나 예비죄로만 처벌 가능하다.
V. 판례 분석
- 대법원 1996.5.28. 선고 96도168 판결
- 사실관계: 피고인이 피해자를 상해하였으나 병원 도착이 늦어 사망
- 판단: ‘행위가 사망에 상당한 원인’이라며 인과관계 인정
- 대법원 2005.6.24. 선고 2005도2297 판결
- 사실관계: 가해자의 폭행과 피해자의 약물복용 자해 사이 인과관계 문제
- 판단: 피해자의 자해는 독립된 제3자의 행위로 인과관계 부정
- 대법원 2014.11.13. 선고 2013도12910 판결
- 피고인의 방치로 인해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 “피해자의 자살은 독립된 자기 결정의 결과로 인과관계 단절” 판시
VI. 결론
형법상 범죄구성의 출발점은 구성요건적 행위이며, 이 행위가 일정한 결과를 발생시켰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인과관계 이론의 과제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사실적 인과관계를 넘어서, 행위자에게 결과 귀속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 창출 여부와 같은 규범적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
결국 구성요건적 행위와 인과관계는 독립적인 개념이지만, 서로 깊게 연계되어 범죄 구성의 객관적 기초를 형성한다. 인과관계의 입증은 형사처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초이며, 행위 개념의 정교화는 책임원칙의 정립에 기여한다.
향후 실무와 이론 모두에서 인과관계 판단의 객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구성요건적 행위 개념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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