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민법상 계약이나 단독행위와 같은 법률행위는 기본적으로 의사표시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법률행위가 현실에서 성립되는 과정에서는 내심의 의사와 외부로 드러나는 표시행위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예컨대 농담으로 “이 집 줄게”라고 말하거나, 속마음과는 다르게 이익을 주는 의사를 표시하는 등의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법률행위의 진정성, 효력 여부, 상대방 보호 문제와 직결되며, 따라서 민법은 일정한 요건 하에서 무효 또는 취소로 의사표시의 효력을 제한한다. 본 글에서는 의사표시의 구조와 개념을 시작으로,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유형, 그에 따른 법률적 효과, 학설 및 판례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고찰한다.
II. 의사표시의 개념과 구조
1. 의사표시의 정의
의사표시란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의사를 외부에 표시한 것을 말한다. 이는 법률행위의 구성요소로, 단순한 의사결정과는 다르며, 반드시 외부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2. 구성요소
내심의 의사 | 행위자가 마음속으로 실제로 바라는 바 (효과의사) |
의사의 결정 | 법률효과를 발생시키겠다는 결단 (의도) |
표시행위 | 언어, 서면, 행동 등 외부로 드러나는 의사 표현 수단 |
예: 매매계약에서 “이 물건을 100만 원에 판다”는 발언
→ 표시행위: 발언
→ 의도: 매매 계약 체결
→ 내심의 의사: 실제로 매도하려는 마음
III. 의사표시와 표시행위의 불일치
의사표시와 표시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법률행위가 유효한지, 무효인지, 또는 취소 가능한지가 문제된다.
1. 불일치의 주요 유형
진의 아닌 의사표시 | 내심과 표시가 고의로 다름 | 민법 제107조 |
통정허위표시 | 표시자와 상대방이 통정하여 허위표시 | 민법 제108조 |
착오에 의한 표시 | 내심의 의사는 있었으나 잘못 표시 | 민법 제109조 |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 | 기망당해 의사 결정 | 민법 제110조 |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 부당한 협박에 따른 의사 표시 | 민법 제110조 |
IV. 각 유형별 분석
1. 진의 아닌 의사표시 (민법 제107조)
(1) 개념
진의 아닌 의사표시란 내심과 표시가 일치하지 않지만, 행위자가 상대방에게 진정한 의사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표시행위를 고의로 한 경우를 말한다.
예: 농담으로 “이 차 팔게요”라고 말했으나, 상대방은 진지하게 받아들인 경우
(2) 법률효과
- 원칙: 의사표시는 유효
- 예외: 상대방이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 무효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 “상대방이 그 표시가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무효로 한다.”
(3) 보호이익
- 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원칙적으로 유효로 보는 것은 거래 안전 보호가 목적
- 단, 상대방의 신뢰 보호 원칙에 한계가 있을 경우 무효
2. 통정허위표시 (민법 제108조)
(1) 개념
표시자와 상대방이 서로 통모하여 허위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를 말한다.
예: A가 B에게 부동산을 명의신탁하기 위해 허위로 매매계약을 체결
(2) 법률효과
- 표시 당사자 간에는 무효
- 선의의 제3자가 있을 경우, 그를 해하지 못한다
민법 제108조 후문: “그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3) 쟁점
- 제3자가 선의인지 여부
- 명의신탁 관계의 법적 성격
3.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민법 제109조)
(1) 개념
행위자가 표시행위에 착오를 일으켜, 내심과 표시가 불일치하게 된 경우
예: 물건값을 100만 원이라고 쓰려다 10만 원이라고 기재
(2) 법률효과
- 일정한 요건 아래 취소 가능
- 요건: 중요한 부분에 관한 착오 + 정당한 이유
민법 제109조: “표시행위에 착오가 있을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취소하지 못한다.”
(3) 효과
- 취소 시 소급하여 무효
- 제3자에게 대항하려면 취소의 의사표시 필요
4. 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민법 제110조)
(1) 개념
- 기망이나 강박을 통해 의사결정을 왜곡시킨 경우
- 사기: 허위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속임
- 강박: 해악을 고지하여 의사 결정 강제
(2) 법률효과
- 취소 가능
- 사기·강박이 제3자의 행위일 경우,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취소 가능
V. 불일치 관련 판례
1. 진의 아닌 의사표시
대법원 1972.9.12. 선고 71다2239 판결
“상대방이 농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진정한 의사표시로 인식했다면, 그 의사표시는 유효”
2. 통정허위표시
대법원 1996.3.8. 선고 95다40466
“명의신탁에 해당하는 통정허위표시는 제3자가 선의인 경우 대항할 수 없다”
3.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대법원 2003.12.9. 선고 2001다63038 판결
“상대방과 거래하면서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었고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취소 가능”
VI. 해석 원칙과 표시주의
1. 표시주의
- 표시행위를 중시하는 민법상 원칙
- 타인이 인식 가능한 표시를 통해 거래 안정 도모
- 다만, 내심의 의사와 현저히 불일치하거나 사회통념상 납득할 수 없는 경우 무효 또는 취소를 통해 조정
2. 의사표시의 해석
대법원 판례 기준: “의사표시는 전체적 취지, 문언, 거래 관행 등을 고려하여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VII. 불일치의 구제 수단
진의 아닌 의사표시 | 무효 주장 가능(상대방 악의 시) | 무효 |
통정허위표시 | 무효 선언 | 제3자 선의면 대항 불가 |
착오 | 취소권 행사 | 소급적 무효 |
사기·강박 | 취소권 행사 | 소급적 무효 |
VIII. 상대방과 제3자의 보호
1. 상대방 보호
- 신뢰보호의 원칙에 따라, 표시는 외형상 진정한 것이라면 원칙적으로 유효
- 그러나 상대방이 고의나 과실로 인해 진의를 알았다면 보호받지 못함
2. 제3자 보호
- 민법은 제3자가 선의·무과실일 경우, 허위표시나 착오 등의 무효·취소 주장을 제한함
- 이는 거래 안전의 관점에서 이해됨
IX. 비교: 고의적 불일치 vs 착오에 의한 불일치
의도 | 고의적 | 비고의적 |
효과 | 원칙적으로 유효, 단서에 따라 무효 | 취소 가능 (중요성 + 정당성 요건) |
상대방 보호 | 신뢰 보호 강조 | 신뢰보다 행위자 보호 우위 |
귀책성 | 행위자에게 있음 | 상대방에게 있음 (기망 시 등) |
X. 결론
의사표시와 표시행위의 불일치는 법률행위의 성립과 효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현대 민법은 표시주의를 중심으로 하되, 일정한 경우 내심의 의사를 보호하거나,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해 무효 또는 취소를 허용한다.
특히 거래 실무에서 의사표시 해석은 계약의 성립 여부, 취소 요건, 무효 판단, 제3자 보호 등 다양한 법적 판단의 기초가 되므로, 실무자나 법률가 모두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법원 역시 이에 대한 판례를 축적하며 거래의 안전과 정의의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비대면 표시행위가 일반화되면서,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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