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트의 “공통언어론”과 법언어의 모호성 문제
I. 서론
법은 언어를 통해 존재한다. 법률은 문장으로 쓰이고, 판결은 언어로 설명되며, 규범은 말과 글을 통해 해석된다. 이처럼 법은 언어를 매개로 작동하기 때문에, 법적 개념과 언어의 본질을 고찰하는 것은 법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법의 언어가 과연 우리의 일상 언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는 의문이다. 법언어는 때로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본 글은 이러한 물음을 중심으로 H.L.A. 하트(Hart)의 공통언어론을 중심으로, 법언어의 특성과 한계, 모호성의 문제, 그리고 법적 해석의 정당화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II. 하트의 공통언어론: 법은 일상언어로 구성된다
1. 하트의 주장 개요
H.L.A. 하트는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에서, 법은 일상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조문은 우리 일반 언어 사용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 법적 규칙은 특별한 철학적 용어나 형식어가 아닌 일반적인 언어로 쓰인다.
- 따라서 법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번역이나 해석 이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그러나 모호성이나 경계 사례에서는 해석이 요구될 수 있다.
“법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다.” ― 하트
2. 하트가 강조한 핵심: ‘규칙’의 구조
하트는 모든 법 규범은 핵심과 경계로 나뉘며, 핵심적인 사안은 일상 언어에 따라 판단 가능하지만, 경계에 해당하는 사안은 사법적 재량과 해석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III. 법언어와 일상 언어: 동일한가?
1. 공통점
- 법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구성된다. 즉, 의미는 기본적으로 문맥에 의존하며,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해된다.
- 일상 언어처럼 법언어도 개방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2. 차이점
구분 일상 언어 법적 언어
문맥 | 유동적이며 개인적 | 제도적 문맥에 따라 제한됨 |
목적 | 의사소통 | 규범 부과 및 강제 |
해석 주체 | 누구나 | 법관, 전문가 중심 |
효과 | 명시적 결과 없음 | 구속력 있는 법적 효과 발생 |
법적 개념은 일상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제도화된 의미 구조를 가지며, 공식적 해석 권한이 일부에게 독점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차이를 가진다.
예: ‘폭행’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선 신체적 공격 전반을 뜻하지만, 형법상 ‘폭행죄’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성립
IV. 법언어의 모호성과 그 철학적 의미
1. 법언어의 개방성
하트는 모든 언어 규칙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는 본질적으로 개방적이라고 하였다. 이 점에서 법도 예외가 아니며,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 모호성이 발생한다.
- 신기술에 관한 규율: “사람”의 개념에 인공지능이 포함되는가?
- 새로운 사회 현상: “가족”의 개념에 동성부부가 포함되는가?
2. 하드 케이스와 해석의 재량
하트는 법관이 경계 사례를 다룰 때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입법적 재량’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이는 법관이 단지 법을 적용하는 기계가 아니라, 법을 보충하는 주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 그러나 하트는 여전히 그 재량은 법질서 내부의 규칙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V. 드워킨의 비판: 법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하트의 공통언어론은 이후 론 드워킨(Ronald Dworkin)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드워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원칙의 문제
- 법은 단지 규칙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원칙이 함께 작동한다.
- 원칙은 일상 언어처럼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으며, 정의와 도덕에 대한 판단을 수반한다.
2. 법언어는 정치적·윤리적 맥락과 분리 불가
- 법언어는 단순히 문장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적 가치 판단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따라서 법적 해석은 단지 언어학적이 아니라 도덕철학적 작업이다.
“법적 개념의 의미는 오직 가장 도덕적으로 설득력 있는 해석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 드워킨
VI. 현대의 법언어 문제: 사례 중심 분석
1. 헌법에서의 ‘인간’, ‘국민’, ‘가족’ 개념
- ‘국민’은 국적이 없는 난민을 포함하는가?
- ‘가족’은 생물학적 혈연만을 뜻하는가?
이러한 개념은 일상 언어로 단순 해석할 수 없으며, 시대적 가치 변화에 따라 동적인 재해석이 필요
2. 형사법상 ‘고의’, ‘과실’의 의미
- 일상 언어에서 ‘고의’는 명확하지만, 형법에서는 인지와 의사의 결합이라는 특별한 구조를 요구
이는 일상 언어와 법언어의 개념적 차이와 전문화를 보여주는 예시
VII. 결론: 법언어는 일상 언어인가, 아닌가?
하트는 법언어가 본질적으로 일상 언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았으나, 드워킨과 후속 학자들은 법언어는 일상 언어를 기반으로 하되, 제도적·정치적·윤리적 의미 작용을 더 깊이 수반한다고 비판하였다.
현대 법체계에서는 점점 더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사안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법적 개념은 더욱 정교한 해석과 비판적 언어 인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따라서 법언어는 단지 일상의 연장선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가치 판단이 결합된 담론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법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켈젠의 순수법학과 ‘기초규범’의 존재론적 문제 (0) | 2025.05.20 |
---|---|
하트의 규칙이론: 1차적 규칙과 2차적 규칙 구조 (0) | 2025.05.20 |
법의 형평성: 실정법의 일률적 적용이 항상 정의로운가? (0) | 2025.05.20 |
법과 권력: 미셸 푸코의 통제장치로서의 법 이해 (0) | 2025.05.20 |
법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마르크스주의 법학의 관점 (0) | 2025.05.20 |